송아지 대신 '마른 소' 매입…'살찐 소'로 키우는 M&A 전략 적중

입력 2019-01-01 17:44  

2019 위기를 기회로 - 창업 기업인의 꿈과 도전

김홍국 하림 회장이 쏜 7개의 'M&A 화살'…농식품산업 全 포트폴리오 완성

2001년 제일사료·한국썸벧 인수
2002년 주원산오리 인수
2007년 돈육가공업체 선진 인수
2008년 축산물 사육 팜스코 인수
2011년 美 앨런패밀리푸즈 인수
2015년 팬오션 통해 해운업 진출



[ 김보라/김재후 기자 ]
“송아지를 600㎏ 정도의 큰 소로 키우려면 3~4년이 걸립니다. 뼈가 앙상하고 아픈 소는 6개월가량만 잘 보살피면 건강을 회복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평가되거나 경영이 부실한 회사는 원인 파악만 잘 해도 금방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10억원 적자 팜스코, 1조원 매출 ‘알짜’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사진)은 자신의 인수합병(M&A) 원칙을 ‘마른 소의 법칙’이라고 소개했다. 하림그룹이 자산 11조원, 매출 8조원이 넘는 대기업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년. 하림은 전략적 M&A로 덩치를 키웠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7건을 성사시켰다. M&A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회사나 병약한 회사도 그의 손에 들어오면 우량기업으로 거듭났다. 하림의 M&A에는 두 가지 철학이 더 있다. ‘우리가 하는 사업과 연관성이 있을 것’ ‘인수 후에는 기존 전통과 기업 문화를 유지할 것’이다.

팜스코는 2008년 하림이 대상그룹으로부터 인수한 회사다. 배합사료에서 양돈과 도축업에 이르기까지 돼지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를 다 아우르는 회사다. 대상의 작은 사업부문이던 이 회사는 하림 인수 이전 연간 매출 4000억원에 10억원의 적자와 흑자를 반복했다. 김 회장이 팜스코를 인수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장의 간판’부터 싹 바꾼 것이다. 그는 “인수하려고 가 보니 회사 건물이 시골 동네 마을회관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팜스코는 그가 찾던 ‘마른 소’로 보였고, 살찌울 일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하림은 팜스코 인수 직후 인도네시아 법인을 세우고 양돈 기술을 수출했다. 하이포크 브랜드의 돼지고기 신선육 판매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양계 노하우를 돼지 사육에도 적용했다. 실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인수 첫해 80억원의 흑자를 냈다. 2017년 팜스코의 매출은 1조243억원, 영업이익은 417억원에 달했다. 사료 판매량도 10년 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었다. 주가는 11배 이상 뛰었다.

닭고기와 사료 사업을 주로 하던 하림은 2007년과 2008년 각각 돈육가공 전문업체 선진과 팜스코를 잇따라 인수하며 종합 축산기업으로 거듭났다.

美 심장부 겨눈 ‘앨런패밀리푸즈’ 인수전

미국은 세계 농식품산업의 심장이다. 규모가 크고 기술력이 높은 데다 정보도 빠르게 유통된다. 축산물 수입 검역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 “미국에만 수출할 수 있으면 유럽과 중국은 그냥 뚫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림은 2014년 미국에 축산물 가공품을 수출한 국내 최초 기업이다. 그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미국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선진 업체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진출 기회를 노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2011년 6월 미국 앨런패밀리푸즈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김 회장의 참모와 지인들은 인수를 극구 만류했다. 앨런은 동부 버지니아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회사였다. 미국 닭고기업체 순위 19위의 중견기업이자 지역 내 가장 큰 기업이었다. 김 회장은 “미국의 80% 수준인 국내 육계 생산성을 20% 정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면 연간 300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를 낼 것”이라며 협상을 지휘했다.

최종 인수전에서 미국 마운테어사와 불꽃 튀는 경쟁도 했다. 상대가 제시한 가격은 3000만달러. 하림은 1000만달러를 더 써냈다. 국내 축산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으론 사상 최대였다. 경쟁사는 앨런 공장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반면 하림은 공장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지역 민심을 잡는 데도 성공해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 이 회사는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며 기업 가치가 뛰어올랐다.

팬오션, ‘승자의 저주’를 깨다

하림을 대기업으로 만든 ‘결정적 사건’은 2015년 팬오션 인수다. 당시 해운 경기는 최악이었다. 국내 1위 벌크선사인 팬오션도 법정관리 위기에 빠졌다. 하림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을 때 시장에서는 “닭고기 회사가 뭘 안다고 해운업이냐”는 냉소가 흘러나왔다. 팬오션 소액주주의 집단 반발도 있었다.

하림이 팬오션 인수에 뛰어든 목표는 하나였다. 농식품산업의 생태계 구축이었다. 시장 자체의 잠재력도 크다고 봤다. “올해 세계 식품시장 규모는 7조달러 이상으로 자동차, 철강, IT 시장을 다 합친 것보다 큽니다. 국내 식품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공간이 차고 넘칩니다.”

하림은 닭고기 회사로 잘 알려졌지만 그보다는 가축 사료가 주력 업종이다. 하림은 팬오션 인수 당시 4조8000억원의 매출 중 사료 부문이 1조4000억원으로, 닭고기 관련 사업(1조1000억원)보다 많았다. 사료 원료인 곡물의 95%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그 돈만 한 해 1조원이 넘게 들었다. 김 회장은 “해운업이 호황일 당시엔 원료값과 운임이 같을 때가 있었을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컸다”며 “대한해운이 매물로 나왔을 때도 심각하게 인수를 고려했을 만큼 곡물 메이저라는 목표는 오래된 꿈”이라고 했다.

팬오션 인수로 하림은 사료, 도축가공, 식품제조, 유통판매, 곡물유통, 해운으로 이어지는 농식품산업의 전후방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김보라/김재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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